무슬림을 위한 기도 운동은 원래 1992년 중동 지역 그리스도인 지도자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했던 지도자들은 무슬림 세계를 위한 기도에 최대한 많은 그리스도인을 동참하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강력한 부르심임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의 라마단 금식월에 맞춰 동일한 기간에 기도 운동을 진행하기로 계획했습니다(2010년은 8월 11일부터 9월 9일까지).
‘30일 기도’가 라마단 금식월 기간에 진행돼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일 년에 한 번 특정 기간에 무슬림과 우리를 동일시하며 기도하는 특별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무슬림의 종교적 열정이 가장 뜨거운 시기에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간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라마단 금식월 기간에 기도하는 일이 무슬림의 금식과 기도 관습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슬람식 사고와 신학과 종교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30일 기도’ 운동은 무슬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중점을 둡니다. 또한 그들을 겸손과 사랑, 존중과 섬김의 자세로 대하라고 장려합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무슬림에게 살아계신
메시아를 발견하도록 돕는 일은 가능하다. 예수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무슬림의 문화와 종교적 맥락에서 거론해야 한다. 따라서 무슬림과 나누는 토론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토론과 그 성격이 달라야 한다.
같은 메시지를 전하더라도 이를 전하는 방법에는 차별을 두어야 한다.
일반적인 원칙
1. 기도한다: 전도 대상인 무슬림 친구나 이웃을 위해
기도하자. 성령이 개입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무슬림들에게 메시아를 주려고 하신다. 무슬림 친구에게 복음을 제대로 알려 주고, 마음에 와 닿도록 전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3. 개인적, 인간적인 교류에 문을 연다: 진심으로 무슬림들을 사랑해야 한다. 관계 속에서 친절과 존중으로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들과 진정한 우정의 관계를 세우고, 그 토대 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여느 관계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도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또 우리도 배울 것이 있다는 마음으로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즐겁게 교제를 나누며 진정으로 교류하자.
4. 인내한다: 무슬림과 교제를 나누기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복음을 전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점은, 대부분 수차례 복음을 들어야 비로소 메시아를 믿을지 말지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복음을 거절한다고 해도 낙심할 필요는 없다. 회개의 자리로 이끄는 것은 하나님의 친절한 사랑임을 기억하자(롬 2:4).
5. 아주 단순하게 복음을 설명한다: 무슬림이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용어를 사용하자. 그리고 죄,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믿음 등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를 미리 밝혀 둔다. 같은 용어라도 무슬림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신약성경이나 성경을 선물한다: 특히 복음서를 정기적으로 읽으라고 권해 보자.
7.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거룩함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신다. 인간은 불의하고 죄성에 묶여 있다.
교육이나 도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다시 태어나야 한다.
8.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나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과 공의에 대해 이야기하자. 무슬림은 하나님이 언약을 베푸시고 이를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간증을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9. 반대 의견도 친절하게 답한다: 뜨거운 논쟁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친구가 되라고 부름받았지 논쟁에서 승리하라고 부름받지는 않았다.
10. 무슬림 친구가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해 믿는다고 말할 때, 순진하게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무슬림들도 예수와 성경을 믿는
다. 하지만 그 믿음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와 크게 다르다. 무슬림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7:3). 단순히 하나님을 대충 아는게 아니라, 그분을 개인적으로
깊이 아는 것을 뜻한다.
피해야 할 일
1. 무함마드 개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선지자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 뿐, 남을 비판하고자 부름받지는 않았다.
2. 꾸란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3.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은 피한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거론하거나 이스라엘에 대해 좋게 말하는 일은 피
하자.
4.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강하게 반박하지 않는다: 무슬림은 이 진리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거나 복음서를 읽을 때, 적절히 설명해 주면 된다.
5. 돼지고기와 포도주에 관한 논쟁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선포하고자 부름받았을
뿐, 굳이 먹고 마시는 법을 세울 필요는 없다. 술 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편이 좋다. 무슬림에게 술을 대접하지 말아야 한다.
구체적 지침
1. 처음에는 서로 유사한 점에 초점을 맞춘다: 처음 무슬림과 만나거나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최대한 무슬림과 우리의 공통된 믿음에 관해 언급하자. 이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 아랍어로 하나님을 가리키는 단어는 ‘알라’다(아랍계 그리스도인들도
이 단어를 사용한다). 무슬림은 하나님을 이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라고 믿는다. 삼위일체는 믿지 않는다. 천사는 믿고, 아브라함, 모세, 다윗, 노아, 예수를 선지자로 믿는다. 또한 마지막 심판을 믿는다. 이들이 믿는 것을 무조건 반박하지
않고 다가가면, 무슬림들은 더욱 열린 마음으로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2. 이야기를 사용한다: 예수님이나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해준다. 대부분은 성경을 읽을 기
회가 전혀 없다(꾸란을 완전히 읽은 사람도 드물다). 성경과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비유와 이야기를 사용하자.
그러면 무슬림 친구들은 우리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3. 매체물을 사용한다: 복음서나 영화 <예수>, 카세트,
CD, DVD, 등을 언어별로 구비해 두자.
4. 직접 찾아간다: 무슬림의 집을 방문하거나 우리 가정에 초대하는 일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무슬림을 초대할 때는 무슬림 전용 정육점에서 고기를 구입하거나
생선 요리를 대접한다.
5. 논쟁: 논리적 논쟁으로는 무슬림을 설득할 수 없다. 무슬림은 서구의 논리에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는다. 대신 무슬림 친구를 사랑하고, 절대 논쟁으로 몰아가지 말자. 친구가 이슬람을 옹호하고 방어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다.
6. 꾸란: 직접 읽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 무슬림들은 성경에 계시된
예수를 만나야 한다. 혹, 직접 꾸란을 읽거나 모스크를
방문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보호함과 깨달음을 주시도록
기도할 것을 권장한다(엡 6:10-18).
7. 남성은 남성에게, 여성은 여성에게: 이성에게 전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신을 통한 전도도 마찬
가지다.
8. 무슬림이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세심하게
준비한다: 무슬림 친구가 교회나 모임에 처음 방문하기로 했다면 미리 준비하게 하는게 좋다. 모임에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짤막하게 설명해 준다.
9. 기독교에 대한 저항: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하면, 분명히 그러한 믿음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할 것이다.
이러한 반대에 부딪힐 것을 미리 예상하고 이에 적절히
대처할 방법을 준비하자. 무슬림들이 반대하는 몇 가지
내용은 이 책자의 다른 부분에 언급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무슬림은 기독교를 서구 문화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거짓에 속아 넘어갔으므로, 무슬림에게는 이들을 이슬람의 진리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많은 무슬림이 ‘기독교인’을 영성도 부족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하고, 물질주의에 물든 사람이라고 본다. 이 때문에 무슬림들은 서구 사회에서 온 것을 부정하고 그릇된
것으로 여긴다.
또 무슬림들은 술취함과 포르노, 자유분방한 생활과 종교심 부족이야말로
서구 몰락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생각은 서구 텔레비전 방송, 영화, 책, 음악을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어느 기독교 작가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관한 무슬림의 사고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새벽녘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멀리있는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가만히 살펴보니 건물은 단층인 것 같다. 하지만 집인지 공장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단층이고 벽돌로 지어졌다는 것만 확신할 뿐이다. 하지만 대낮에 가까이 가서 보니 벽돌이 아니라 돌로 된 건물이었고, 단층이 아니라 3층 건물이다. 이제야 건물의 실제 모습을 분명하게 보았다.
무슬림이 꾸란의 계시라는 어스름한 불빛과 자기 나름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분의 능력과 뜻은 봐도 그분의 사랑은 보지 못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보더라도, 삼위일체로 하나된 하나님은 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만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윌리엄 M. 밀러가 쓴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A Christian’s Response to Islam), (Pres-
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76)에서
발췌한 내용.
4월달 GT중보기도는 서유럽 무슬림을 위한 기도였다. 아래는 홈페이지에서 스크랩한 것이다.
이번 달에는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테러리즘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전제 군주적 정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제군주정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으로 탈주한 동아시아 종족그룹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테러리즘으로 알려진 가해자와 희생자 종족그룹을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 한 명이 전에 테러리스트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의 이름은 셀롯 시몬인데 로마 군인들에게 슬그머니 칼을 들이댔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누가 이런 사람이 훗날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번 달 기도의 대상인 서부유럽의 종족그룹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질 뿐만 아니라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 무슬림들이 평화롭지만 그들의 신학과 세계관의 일부분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종교 공동체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테러를 저지르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슬림들도 셀롯인 시몬과 같은 급진적인 유대인들과 공통된 한 가지가 아직까지 이슬람 안에 남아있습니다. 현대 영어의 ‘열성 zeal’이라는 단어는 ‘셀롯’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시몬이 하나님에 대한 열성이 있었던 것처럼 무슬림들에게는 알라에 대한 열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열성은 자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정치적인 논리와 혼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알라에 대한 이 열성이 창조주 하나님과 혼란의 행동까지 포함한 우리의 죗값들을 모두 치르신 예수께로 이끌어 지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서유럽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를 모집하는 중심입니다. 2001년 9월 11일의 공격의 지도자들은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조직에서 나왔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스페인과 영국의 폭발사건에 관련된 대부분의 과격분자들도 이 유럽국가들 출신입니다.
소수의 유럽 국가만이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이거나 테러리즘을 지지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청년들에 대한 한 연구를 통해 많은 유럽 출신들이 테러리즘을 지지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영국의 알-아라비아의 매니저인 알-라셰드는 이슬람의 테러리즘이 어떻게 신앙과 무슬림들에게 영향을 주는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무슬림들이 테러리스트들이 아니지만 거의 모든 테러리스트들이 무슬림들이라는 것이 분명하고 정말로 고통스러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시대에는 이맘의 종교적인 메시지는 거의 도덕률이나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네오무슬림(Neo-Muslims)이 등장하자 이슬람의 메시지는 증오와 국제적인 전쟁에 대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들은 어린 학생들을 인질로 잡고, 기자를 유괴하거나 시민들을 살해하고 버스를 폭파합니다.
타오르는 분노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무슬림 이민자들은 과거 유럽의 식민지였던 지역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유럽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며 과거 식민지시절 때문에 생겨난 굉장한 분노를 실천에 옮깁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생활과 정부혜택과 교육 , 그리고 고용과 정부안에서 권리를 갖기 위해서 개혁을 호소합니다.
많은 유럽의 무슬림들은 신앙생활을 정부규제에 의해서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한 예로 유럽의 몇몇 지역에서는 여성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슬림 여성들은 강한 무슬림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대부분 알코올과 낙태, 간음, 동성연애, 세속화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이슬람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서부 유럽의 가치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삶을 살고 이러한 것들에 반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해 합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테러리스트와 그들의 지도자들은 젊은 편인데 실직과 낮은 교육수준과 가난, 억압당하는 느낌들과 비천함, 무가치함 들의 문제들로인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테러리스트들은 교육을 잘 받고 좋은 직장과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이슬람 정부가 지배하게 된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코란이 말하는 전쟁과 테러리즘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테러리즘이 이슬람의 것이 아니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코란의 가르침을 이용합니다. 굉장히 많은 코란의 구절들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신자들이여, 주변의 거주하는 이교도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라! 그들을 엄격하게 대하라. 알라는 의로운 자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라!” (Surah 9:123). “우상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그들과 싸우고 알라의 종교가 온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라” (2:193). “알라를 위해 목숨을 잃는 자들에게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낙원에 이르도록 알라는 그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10:4-15). 무슬림이 낙원에 이르는 확실하고 유일한 길은 이교도를 죽이거나 “성전(holy war, 지하드)”에서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유일한 대속물 되시고 낙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 되신 그의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슬람의 테러리즘이 존재하는 가장 안타까운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이와 함께 코란은 또한 평화로운 관계와 이웃들과 공존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러 구절들이 있습니다. 무슬림들은 이 구절들을 인용하며 이슬람은 평화로운 종교라고 주장합니다. “알라를 위해 너희를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과 싸우라! 하지만 그들을 먼저 공격하지 말라! 알라는 공격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2:190). 이것은 때로 무슬림들이 전쟁을 시작하지 말고 시민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다른 면에서는 악을 행하거나 살인에 대한 처벌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사람을 죽이는 자는 모든 인류를 죽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고 누구든지 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모든 인류를 구한 자로 여길 것이니라" (5:32).
어떻게 여러분은 코란에 표현된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들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학자들이 코란을 연구하고 내린 결론은 이 구절들이 모하메드 사역의 초기에 쓰인 것으로 그의 추종자들이 적었을 때에는 평화로운 관계를 권면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모하메드는 유대인들과 크리스천들이 무슬림이 되기를 소망했었습니다. 당시 평화는 그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학자들이 믿기로는 폭력과 전쟁을 권장하는 코란의 구절들은 이슬람을 따르지 않는 자들에게 그의 뜻을 강요할 만큼 군사적으로 강력하게 성장한 후기에 기록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온건한 무슬림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이들이 그들에게 복종하고 이슬람의 군사적 행동에 따르게 하는 것을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테러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른 무슬림을 대면하는 일을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만일 그들이 다른 무슬림을 "죄인"으로 부당하게 부른다면 그것은 알라 앞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소자는 알라에 의해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약화되는 유럽의 교회
유럽에서 기독교의 쇠퇴와 우연의 일치로 이슬람의 성장을 보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독일의 맨하임(Mannheim)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큰 야부즈-술탄-셀림(Yavuz-Sultan-Selim) 모스크는 맨하임의 가장 큰 교회인 라이브 프로엔(Liebfrauen)교회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3천명이상이 기도와 예배를 위해 모스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주일에 150명이상이 성당의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맨하임만이 아닙니다.
영국의 크리스천 연구소의 조사는 4천개에 달하는 영국 교회가 향후 15년 안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반대로 서부 유럽에서 1만 명의 이맘들이 생겨난 것으로 추산하였습니다. 스웨덴에서는 250개의 모스크마다 적어도 한명의 이맘이, 덴마크에는 150개의 모스크, 화란에는 4백 개의 모스크, 아마도 영국과 프랑스에 1천 6백 개의 모스크와 독일에 2천 6백 개 이상의 모스크들마다 적어도 한명의 이맘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모스크들은 작고 정부들이 참석자들의 정확한 숫자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 모스크들에서 누가 설교하는지 어디에서 온 이맘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맘들은 보통 제한된 이슬람식 훈련을 받았고 파트타임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몇몇의 이맘들은 사우디에서 재정적인 도움을 받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의 무슬림들이 전체인구의 5%미만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신앙과 대가족제도의 생명력으로 인해 곧 이슬람이 대륙의 주도적인 신앙이 될 것이라고 예견합니다.
독일의 정치 과학자인 클라우스 레게위(Claus Leggewie)가 진술하는 바는 “무슬림들은 값비싼 모스크들을 지음으로써 그들이 여기에 존재하고 이곳에서 머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유럽의 무슬림들은 크리스천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반면에 크리스천들은 무슬림들이 더 세속화되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슬프게도 이것은 프랑스의 이슬람 전문가인 올리비아 로이가 한 정확한 판단입니다. 그러면 누가 무슬림에게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말씀에 기초해야한다고 보여줄 것입니까? 지상명령 (마28:18-20)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크리스천들은 무슬림과 친구가 되어야 하고 그들 앞에 거룩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의 삶을 통해 무슬림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도록 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유럽 사람들이 사회의 쇠퇴함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무슬림들이 진심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이로 인해 무슬림들이 영원한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고 성령이 그들의 삶을 인도하심을 통해 이슬람 테러리즘이 쇠퇴할 것입니다.
참된 신자들이 무슬림의 친구들이 되고 거룩한 삶을 통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크리스천 복음전도자들과 학자들을 일으키셔서 신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신자들과 학자들의 마음 문을 열어 유럽의 이슬람 교사들을 만나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게 하도록 기도합시다.
무슬림들이 신자들에게 반응하여 성경의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기도합시다.
'이슬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며 '무슬림'이란 이슬람의 법도와 관습을 따르는 이를 말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뿌리가 아담에 있다고 말하지만 무함마드를 이슬람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추앙하고 있다. 실제로 무함마드라는 이름은 ‘찬양받는 자’라는 뜻이다.
01 무함마드의 생애:
카바신전
무함마드는 주후 570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력한 꾸라이시(Quraysh) 부족의 하심 가문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무함마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하였고 무함마드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 아미나가 사망하면서 무함마드는 메카의 가장 신성한 건물인 카바(Kaaba)신전의 관리인이었던 조부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무함마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조부마저 세상을 뜨면서 거대한 낙타 무역로에서 무역상으로 일하던 삼촌 아부 탈리브(Abu Talib)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무함마드가 살았던 시대에 아라비아에는 이교적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아랍인들이 숭배하던 신과 여신의 수는 360개에 달했고 당시 메카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다. 무슬림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어릴 때부터 우상숭배를 혐오했으며 도덕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40세가 되면서 무함마드는 동족들의 상황에 대해 깊이 걱정하기 시작했고 일상의 대부분을 명상으로 보냈다. 라마단 기간이면 무함마드는 종종 메카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히라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후 610년 라마단 기간에 무함마드는 천사장 가브리엘로부터 계시와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때 받았던 ‘계시’가 꾸란의 근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함마드 자신도 본인이 예언자임을 확신하지 못했으나 결국은 믿게 되었다고 한다. 꾸란과 더불어 무슬림이 신봉하는 경전인 하디스(Hadiths)는 무함마드의 삶, 가르침, 율례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대부분의 무슬림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
꾸란 고대 사본의 일부
생전에 무함마드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났다고 하나 이들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무함마드는 당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던 여러 유대인 가문을 통해 유대교 관습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훗날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하던 메카 북부 도시 메디나(Medina)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메디나의 유대인들은 무함마드가 예언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이는 결국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졌다. 유대교 및 기독교적 사상, 개념, 역사가 꾸란에 많이 녹아 있으나 왜곡된 부분도 많다.
무함마드는 꾸란이야말로 유일한 지존자가 주신 마지막이자 최고의 계시임을 선포했다. 우상숭배를 금지시켰으며 무슬림이라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알라에 헌신하고 매일 정결의식을 행한 후 메카를 향해 다섯 번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금요일을 함께 예배하는 날로 지정했다.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대부분의 지역에 파고들었다. 무함마드 사후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슬람교는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전파되었고 점차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무함마드는 주후 632년 메디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02 무함마드의 가족 사항:
젊은 시절 무함마드는 부유한 과부였던 카디자의 밑에서 일하며 대상((隊商)무역을 관장했다. 무함마드는 신뢰할만한 자라는 뜻의 ‘알 아민(Al-Amin)'으로 불렸다. 무함마드는 25살 되던 해에 카디자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아들 둘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으며 딸 파티마는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함마드의 사촌 알리와 파티마가 결혼했다. 알리는 훗날 4대 칼리프(무함마드의 후계자) 직위에 올랐다. 알리와 그의 아들 후세인은 시아파 이슬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모로코와 요르단의 통치자들은 바누 하심(Banu Hashim), 즉 하심 가문(무함마드의 증조부의 후손) 출신이다.
카디자와 무함마드의 결혼생활은 25년 동안 유지됐으며 카디자가 세상을 떠난 후 무함마드는 일부다처제를 따르기 시작했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15명의 여인과 결혼했으나 그 중 13명과만 동침했다고 한다. 그 외 몇 명의 정부를 두었으며 한 번에 9명 이상의 부인은 거느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수많은 부인을 둘 수 있도록 허락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부양능력에 따라 최대 4명의 부인만 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충격적일 수 있으나 무슬림들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많은 성경 속 인물들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