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라는 단어

아랍어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뜻하는 말로 ‘알라’를 사용하고 있음에 주의하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알 일라흐’(Al Ilaah)라는 단어로 사용하는 아랍계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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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오는 그림은 성경 요한복음 1장 1절의 내용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무슬림에게는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어느 기독교 작가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에 관한 무슬림의 사고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새벽녘 어스름한 불빛 아래서 멀리있는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가만히 살펴보니 건물은 단층인 것 같다. 하지만 집인지 공장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단층이고 벽돌로 지어졌다는 것만 확신할 뿐이다. 하지만 대낮에 가까이 가서 보니 벽돌이 아니라 돌로 된 건물이었고, 단층이 아니라 3층 건물이다. 이제야 건물의 실제 모습을 분명하게 보았다.

무슬림이 꾸란의 계시라는 어스름한 불빛과 자기 나름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분의 능력과 뜻은 봐도 그분의 사랑은 보지 못한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보더라도, 삼위일체로 하나된 하나님은 보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만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윌리엄 M. 밀러가 쓴 《이슬람에 대한 기독교인의 반응》(A Christian’s Response to Islam), (Pres- 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1976)에서 발췌한 내용.
이슬람의 성전(聖典), 꾸란에 나타난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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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고대 사본의 한 페이지

사실 예수에 관한 꾸란의 내용에는 성경적으로도 맞는 부분이 있다. 예수는 동정녀에서 태어나, 눈먼 자와 나환자를 고치는 기적을 행했고, 죽은 자를 살리고, 제자를 거느렸으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부당했다. 또한 꾸란은 예수를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사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에게서 온 영’, ‘의로운 자’ 등으로 불렀다. ‘메시아’라는 호칭도 꾸란에서 열한 번이나 등장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무 설명이 없다.

일반적으로는 동정녀 탄생을 강조하고자 ‘마리아의 아들, 이사’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한다. 그렇지만 꾸란은 예수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 아니고(단순한 선지자일 뿐),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며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설령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하더라도 대속 제물로 죽었을 가능성은 없다며 그 사실을 부인한다. 그리고 꾸란에는 심판 날에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세 번씩이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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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우안 시 묘지를 지나는 튀니지 여인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해도, 꾸란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난 메시아이자 왕이라는 진리를 무슬림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신학적 장벽이다. 꾸란을 통해서는 메시아가 죄를 용서했고, 죄악과 사탄과 불의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벧후 3:13).

꾸란의 세 번째 장인 알 이므란(‘이므란의 가족’) 45-51절에 나오는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보라(꾸란도 성경처럼 장[수라]과 절[아야트]로 나뉘며, 총 114개의 수가 있다). 인터넷에 꾸란의 내용을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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