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인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소식

여인의 이름은 '누라'다. 십 남매와 함께 어울려 산다. 누라는 여느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치장하기를 좋아한다. '부르카'로 몸을 가리기는 해도 화장하는 걸 즐긴다. 또 친한 친구들과 휴대전화로 수다 떨기, 인터넷으로 채팅하는 것도 좋아한다.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는 오빠나 남동생들보다 공부를 잘했다. 어머니는 누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누라보다는 장남이 좀 더 똑똑했으면 하고 바라셨다. 누라는 대학에 다니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보다 어려웠던 건 사실이지만, 정말로 의지할 만한 사람들을 그곳에서찾았다. 이제 학교는 졸업했고 그 근처에 직장을 구하려고 한다.

누라는 마음 깊이 의지 할 남성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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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라에게는 큰 소망이 있다. 아직 스물세 살이지만 자신을 사랑해 줄 남성을 간절히 찾으려고 한다. 친구들이 두 번째 부인으로 결혼했다가 몹시 낙담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누라는 여러 아내를 거느린 남자에게 시집가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믿음을 나눌만한 적절한 신랑을 보내 주시길 소망한다. 가족들은 여느 가족들처럼 누라가 만나야 할 '적절한' 신랑감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누라에게는 하늘의 소망으로 충만한 멋진 신랑과 결혼하여, 믿음의 자녀를 키우려는 소망이 있다.

친구들은 누라에게 변화가 생겼다는 걸 눈치 챘다. '빛'이라는 이름 그대로 누라가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누라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다. 이제 자신이 발견한 자유와 소망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특별한 책: 누라에게는 꼭꼭 숨겨 두어야 할 특별한 책이 있다. 능력과 힘이 담겨 있는 책, 이것은 누라의 MP3 플레이어에 숨겨져 있다. 많은 사람이 최신 아랍 음악에 심취하지만 누라는 이어폰을 끼고서 말씀을 듣는다. 이 말씀은 하루 동안 있었던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힘을 준다. 또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기쁨과 평안을 준다. 누라는 말씀이 자신의 삶에 더욱 깊이 역사하고 있음을 느꼈다.

누라는 사촌 동생도 이 생명의 양식을 맛보게 되기를 바랐다. 사촌 동생도 말씀을 조금은 들어 보았다. 그런데 말씀이 흥미롭기는 해도 너무 급진적이라서 두렵다고 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지? 우리 종족중에 원수를 용서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어." 누라는 홀로 있을 때에도 초자연적인 임재를 느낀다. 그 여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리스도인이다.

MP3 아랍어 성경 http://www.ibs.org/bibles/arab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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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며 '무슬림'이란 이슬람의 법도와 관습을 따르는 이를 말한다.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뿌리가 아담에 있다고 말하지만 무함마드를 이슬람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추앙하고 있다. 실제로 무함마드라는 이름은 ‘찬양받는 자’라는 뜻이다.

01 무함마드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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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신전

무함마드는 주후 570년 사우디아라비아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력한 꾸라이시(Quraysh) 부족의 하심 가문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무함마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하였고 무함마드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 아미나가 사망하면서 무함마드는 메카의 가장 신성한 건물인 카바(Kaaba)신전의 관리인이었던 조부의 손에 자라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무함마드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조부마저 세상을 뜨면서 거대한 낙타 무역로에서 무역상으로 일하던 삼촌 아부 탈리브(Abu Talib) 밑에서 성장하게 된다.

무함마드가 살았던 시대에 아라비아에는 이교적 우상숭배가 만연했다. 아랍인들이 숭배하던 신과 여신의 수는 360개에 달했고 당시 메카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다. 무슬림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어릴 때부터 우상숭배를 혐오했으며 도덕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40세가 되면서 무함마드는 동족들의 상황에 대해 깊이 걱정하기 시작했고 일상의 대부분을 명상으로 보냈다. 라마단 기간이면 무함마드는 종종 메카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히라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주후 610년 라마단 기간에 무함마드는 천사장 가브리엘로부터 계시와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 때 받았던 ‘계시’가 꾸란의 근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함마드 자신도 본인이 예언자임을 확신하지 못했으나 결국은 믿게 되었다고 한다. 꾸란과 더불어 무슬림이 신봉하는 경전인 하디스(Hadiths)는 무함마드의 삶, 가르침, 율례 등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대부분의 무슬림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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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란 고대 사본의 일부

생전에 무함마드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만났다고 하나 이들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무함마드는 당시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던 여러 유대인 가문을 통해 유대교 관습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훗날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하던 메카 북부 도시 메디나(Medina)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메디나의 유대인들은 무함마드가 예언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이는 결국 심각한 분쟁으로 이어졌다. 유대교 및 기독교적 사상, 개념, 역사가 꾸란에 많이 녹아 있으나 왜곡된 부분도 많다.

무함마드는 꾸란이야말로 유일한 지존자가 주신 마지막이자 최고의 계시임을 선포했다. 우상숭배를 금지시켰으며 무슬림이라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알라에 헌신하고 매일 정결의식을 행한 후 메카를 향해 다섯 번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금요일을 함께 예배하는 날로 지정했다.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대부분의 지역에 파고들었다. 무함마드 사후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슬람교는 서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전파되었고 점차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무함마드는 주후 632년 메디나에서 생을 마감했다.

02 무함마드의 가족 사항:

젊은 시절 무함마드는 부유한 과부였던 카디자의 밑에서 일하며 대상((隊商)무역을 관장했다. 무함마드는 신뢰할만한 자라는 뜻의 ‘알 아민(Al-Amin)'으로 불렸다. 무함마드는 25살 되던 해에 카디자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아들 둘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떴으며 딸 파티마는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이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함마드의 사촌 알리와 파티마가 결혼했다. 알리는 훗날 4대 칼리프(무함마드의 후계자) 직위에 올랐다. 알리와 그의 아들 후세인은 시아파 이슬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오늘날 모로코와 요르단의 통치자들은 바누 하심(Banu Hashim), 즉 하심 가문(무함마드의 증조부의 후손) 출신이다.

카디자와 무함마드의 결혼생활은 25년 동안 유지됐으며 카디자가 세상을 떠난 후 무함마드는 일부다처제를 따르기 시작했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15명의 여인과 결혼했으나 그 중 13명과만 동침했다고 한다. 그 외 몇 명의 정부를 두었으며 한 번에 9명 이상의 부인은 거느리지 않았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이 자신에게는 수많은 부인을 둘 수 있도록 허락하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은 부양능력에 따라 최대 4명의 부인만 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충격적일 수 있으나 무슬림들은 다윗과 솔로몬을 비롯한 많은 성경 속 인물들이 여러 명의 부인을 두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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