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920년전 1099년 7월 15일 새벽 두시경 프랑크군이 예루살렘 성의 북쪽 성루 점령으로 사실상 예루살렘 성을 되찾았다. 

약 460여년 맞에 되찾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095년부터 1291년까지 약 200여년간 간헐적으로 일어난 십자군 전쟁.

간헐적이라고 하기에는 9차례나 파병되어 당시 기독교 국가였던 비잔틴 제국의 지역과 시리아 지역, 팔레스타인 지역에 많은 고통을 심겨준 전쟁이다.  

여러가지 관점으로 십자군 전쟁을 볼수 있지만 과연 군대를 통하여 전쟁을 일으키는 것, 게다가 군대의 이름을 십자군이라고 지은것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방법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 가지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떻게 확산되어 왔는가? 이부분은 이슬람과 매우 대조를 이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슬람은 종교와 국가가 하나의 형태로 세워져 군대를 통해서 확장 되었습니다. (칼리프시대, 우마이야왕조, 압바스왕조시기)  아라바아 반도 메디나를 시작으로 메카를 점령한후 아라바아 반도 이집트, 페르시아 지역 이후 북아프리카와 스페인까지 군대를 일으켜 점령한 후 서서히 이슬람화 시겼고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역은 매우 강한 이슬람의 지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떻게 확산되어 왔는가? 아무런 힘과 권력이 없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들의 삶과 복음 전도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고난가운데 복음의 확산을 이룬것을 볼수 있다.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곡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곡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빌 2:5-8)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군대를 통한 무력과 같은 힘이 아니라 종의 형체를 가질 정도로 자신을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종이 되시고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기 까지 복종함으로 구원의 복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복음인 것이다.

우리 나라의 초기 선교사들도 조선이라고 하는 나라에 와서 죽기까지 자신을 비우면서 복음을 나누었다.

이러면서 복음의 확산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대한민국이라는 이 나라 안에서 어떻게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을거 같다. 우리 교회가 우리 신자들이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로 있어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복음을 위해서 어디까지 비울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질문해 봤으면 한다.

 

다시 십자군 전쟁으로 돌아와서 십자군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가 된 곳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지나간 곳을 약탈했다. 군대대 군대와의싸움 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의 민간인들까지 약탈한 것이다. 그 약탈의 대상은 기독교인들도 있었고 무슬림들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봤을때 이 일은 복음 전파의 걸림돌로 남은 전쟁이 된것이다. 반면 훗날 이슬람 세력으로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한 쿠드드 출신의 살라딘은 복수하지 안는 관용을 모습을 보였다. 오늘날에도 살라딘은 유럽에 관대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 링크의 기사를 보고 920년전 오늘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을 돌아보면서 2000년대를 사는 우리의 지금 모습을 바라 보고, 이 세상 가운데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세 써보았다.   

 

 

오늘의 경제소사] 1차 십자군 예루살렘 점령 https://www.sedaily.com/NewsView/1VLOW2I4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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